[강천석 칼럼] '토목 공사 대통령' 뽑을 만큼 뽑았다
박근혜 전 대표 公約의 무서움 가볍게 봐선 안돼
대한민국은 토목 공사 말고 미래를 향한 진짜 비전 원해
신공항 문제를 두고 이 얼굴 저 얼굴이 온갖 말을 쏟아낼 때마다 '참 말 잘한다. 그래 당신 말이 옳다'며 여남은 번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니 절로 두 손이 모아졌다. "하늘이여, 이 나라를 저들로부터 지켜 주소서. 저들은 아직도 세계가 토목 공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요 며칠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속 추진 여부를 둘러싸고 이 나라 실력자들이 토해낸 말 부스러기를 쓸어담던 상당수 국민 마음이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때 공약은 지키는 것이 도리이나 현재의 국민은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 부담을 물려주는 사업을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밀고 나갈 수는 없었다"고 했다. 말은 옳다. 그렇다 해도 국민의 무상 복지 요구가 목젖까지 차오른 나라 처지에 적으면 10조 많으면 20조원이란 생돈을 부어 바다를 메우고 산을 허무는 토목공사를 벌이는 게 적절치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재선거·보궐선거·총선거를 치를 만큼 치르고서야 깨닫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는지 모르겠다. 동남권 신공항 사태를 이런 식으로 유야무야(有耶無耶) 흐지부지하게 되면 자기 입으로 자기의 공약을 뒤집는 사태가 올 때 오더라도 우선 대통령 먼저 되고 보겠다는 정치인 행렬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말은 격조(格調)가 있다. 박 전 대표는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게 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정치권 전체가 거듭나야 한다"면서 "정부나 정치권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만 예측이 가능한 나라가 된다"고 했다. "제 입장은 신공항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라고 못도 박았다. 대통령 꿈을 키우고 있는 다른 누구를 이 무대에 세웠어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여권 내는 물론이고 야당까지 포함한 대선 후보 레이스에서 다른 주자(走者)들을 까마득하게 멀리 따돌리고 혼자 내닫고 있는 사실상의 유일(唯一) 후보다. 그의 말대로라면 내년 대선에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은 박 후보 공약으로 되살아나고,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엔 난형난제(難兄難弟) 같은 두 후보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사태가 다시 벌어질 터이다. 한 곳은 105km 떨어진 바다 밑에서 모래를 퍼와 바위와 흙을 섞어 24t 덤프트럭 870만대에 실어 평균 수심(水深) 19m의 바다를 메워야 한다. 다른 곳은 27개의 산봉우리를 깎아내 24t 덤프트럭 1240만대 분량의 바위와 흙을 7~15km 밖으로 옮겨 쌓아야 하는 공사다. 두 곳 모두에 낙점(落點)의 가능성을 열어뒀으니 열기는 갈수록 더 높아질 테고 그랬다가 뚜껑을 열어 탈락한 곳은 성난 분화구(噴火口)처럼 벌건 바윗물을 쏟아낼 게 분명하다. 가부(可否)를 떠나 현기증 나는 이야기다."정치 지도자라면 결정이 나기 전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지 결판이 나버린 후 나서면 뭘 하느냐"는 것이 야당만의 물음은 아니다. 국민도 이걸 묻고 싶다.
선거 때마다 신공항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만큼 우려먹었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주민 등 뒤에서 '범인이 저기 있다'며 대통령에게 탈당하라고 고함을 쳐대는 여당 의원들 역시 구제할 가치가 없다.
야당은 또 어떤가. '수도 이전' '혁신 도시' '기업 도시' '178개 공공기관 전국 흩뿌리기'라는 토목공사로 전국을 불도저로 뒤집어놓은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이 '신공항 계속 추진 쪽에 서는 게 나을까' 아니면 '신공항 재검토 쪽에 서는 편이 나을까'하고 주판을 튕기며 불난 집에서 밤 구워 먹을 궁리나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초라하다.
면적 10만km²의 한국은 G20 국가 가운데 국토가 가장 작은 나라다. 바로 위 영국(24만4000km)도 우리 두 배가 넘는다. 중국의 22개 성(省)과 5개 자치구(自治區)의 넓이와 비교하면 22번째의 크기와 비슷하다. 10년 후 출현할 시속 400km의 고속철로 달리면 1시간 반 만에 국토의 끝과 만나 더 이상 달릴 곳이 없는 나라다. 이런 땅에 살면서 '새만금 대통령' '수도 이전 대통령' '4대강 대통령' 등 '토목공사 대통령'을 그만큼 뽑았으면 뽑을 만큼 뽑았다. 그래서 국민의 삶이 더 윤택해지고 젊은이가 세계를 향해 꿈을 펼치고 국가의 앞날에 자신감을 갖게 되지도 않았다. 처음 속았을 때는 속인 사람을 탓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같은 수법에 당하면 자기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다. 우리 국민도 이제 이 나라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을 향해 토목공사 말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진짜 비전은 없느냐고 호통치고 야단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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